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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를 잡는 아버지, 가난 속 자존과 부성의 상징

by eeventi 2025. 4. 21.

『나비를 잡는 아버지』는 아동문학가 현덕의 대표 단편으로, 겉보기에는 단순한 어린이의 시선으로 그려진 이야기 같지만 그 속에는 한국 사회의 계급 구조, 가난한 가장의 자존, 그리고 부성애라는 깊은 주제가 서려 있다. 특히 이 작품은 ‘나비’라는 상징을 통해 현실의 고단함을 뚫고 꿈을 좇는 인간의 본성을 섬세하게 조명한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나’의 순수한 시선은 독자로 하여금 그 시대의 아버지들을 다시 보게 만들고,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이 글에서는 『나비를 잡는 아버지』에 담긴 부성애와 자존, 그리고 상징성을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깊이 있게 분석한다.

맨발의 아버지와 아들이 들판을 달리며 나비를 쫓는 장면

나비를 잡는 아버지는 가난 속에서도 지키려는 아버지의 자존

이 작품의 핵심적인 배경은 가난이다. 아버지는 변변한 일자리 하나 없이 매일 나비를 잡으러 다닌다. 당시 사회에서 ‘나비를 잡는 남자’라는 직업은 결코 존중받지 못하는 일이었다. 심지어 아이의 눈으로도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다. 그러나 이 아버지는 나비를 잡는다는 이유만으로 주눅 들지 않는다. 그는 당당하다. "나비는 아름답고, 그것을 잡아 팔 수 있다"는 신념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자존심의 표현이다.

현덕은 이러한 아버지의 태도를 절제된 언어로 담담하게 묘사하지만, 그 속에는 강한 자존이 깃들어 있다. 이는 단지 한 개인의 고집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그는 가장으로서 경제적인 능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음에도, 자신의 방식으로 가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에 당당함을 느낀다. 특히 어린 아들의 시선에서 그려진 아버지의 모습은 외부 세계와 충돌하지만, 동시에 존경의 대상이기도 하다. 세상의 평가와는 달리, 아버지는 ‘나’에게 여전히 긍지를 지닌 인물로 남는다.

‘자존’이라는 개념은 이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빈곤이라는 배경은 아버지의 행동을 한층 더 슬프고 위태롭게 만들지만, 그는 포기하거나 타협하지 않는다. 나비를 잡는다는 행위는 단지 노동의 상징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유지하려는 철학적 선언과도 같다. 이처럼 현덕은 가난한 이들이 흔히 겪는 ‘존엄의 상실’을 정면에서 부정한다. 아버지는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방식으로 생존을 선택했고, 그 안에서 자신의 자존을 지킨다. 이 지점이 바로 『나비를 잡는 아버지』가 단순한 가난 이야기로만 읽히지 않는 이유다.

자식을 위한 부성애, 침묵 속에서 흐르다

이 작품에서 아버지의 감정 표현은 크지 않다. 그는 자식에게 무언가를 크게 가르치려 들지도 않고, 자신의 고통을 토로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독자는 그의 침묵 속에서 강렬한 감정을 감지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부성애다. 그는 하루 종일 산을 오르고 들을 누비며 나비를 잡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아이에게 부끄럽게 남기고 싶지 않다. 아들이 자신을 당당하게 바라보기를 바란다.

그는 아이에게 늘 밝은 얼굴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잡은 나비를 보여주며 "이쁘지 않냐" 하고 묻는 장면은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세심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직접적으로 “너를 사랑한다” 말하지 않아도, 그 모든 행동 속에 사랑이 스며 있다. 아버지는 늘 자식의 자존감을 먼저 챙긴다. 자신이 힘들더라도, 아이에게만큼은 멋진 아버지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은 현실 속 수많은 부모의 모습과도 닮아 있어 독자의 감정을 자극한다.

특히 아버지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주변의 비난에도 꿋꿋이 나비를 잡는 모습을 보고, 아이는 점차 아버지를 이해해 간다. 이는 성장의 과정이며, 동시에 ‘존경’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현덕은 아버지라는 존재를 이상화하거나 영웅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연약하고, 때로는 초라해 보일 수 있는 아버지의 현실적인 면을 보여주면서도, 그 안에 담긴 숭고한 사랑을 보여준다. 이러한 정서는 이 작품을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받게 만든 핵심 요소다.

부성애는 흔히 위대한 희생으로 표현되지만, 이 소설에서는 소소하고 조용하게 표현된다. 독자는 그런 점에서 더 깊은 공감을 느낀다. 말보다 행동, 행동보다 태도에서 묻어나는 사랑이야말로 가장 강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나비를 잡는 아버지』의 아버지는 침묵으로 말하고, 그 말은 오랫동안 독자의 마음에 남는다.

나비라는 상징, 자유와 희망의 은유

작품 속 가장 핵심적인 상징은 제목에 드러난 ‘나비’다. 나비는 단순한 곤충이 아니라, 이 소설 전반에 걸쳐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나비는 아버지의 직업 수단이다. 둘째, 나비는 아름다움 그 자체다. 셋째, 나비는 아버지에게 꿈과 희망, 자유의 상징이 된다. 그는 물질적 부나 사회적 명예는 없지만, 나비를 잡으며 세상과 연결되고, 자신을 지켜간다.

나비는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난다. 이는 곧 자유의 은유다. 굶주림과 가난이라는 현실에 발이 묶여 있으면서도, 아버지는 나비를 통해 상징적으로 하늘을 난다. 누군가는 그것을 무가치하다고 비웃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나비는 **현실을 견디는 정신적 지주**이자, **가난한 인간의 아름다운 저항**이라 할 수 있다. 또, 나비는 ‘나’에게도 특별한 존재가 된다. 처음에는 왜 아버지가 나비를 잡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점차 나비를 통해 아버지의 삶을 읽고, 사랑을 깨닫는다.

현덕이 ‘나비’를 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은 작고, 가볍고, 쉽게 죽을 수 있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가장 자유롭고 아름다운 존재다. 이는 작고 연약하지만 존엄을 잃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모습과 절묘하게 겹쳐진다. 나비는 현실과 꿈 사이를 날아다니는 존재이며,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으로 기능한다. 또한, 나비는 어린 독자에게는 시각적 매력을, 성인 독자에게는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다. 누구나의 삶 속에도 ‘나비 하나쯤은 품고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결국 이 소설의 ‘나비’는 고단한 삶 속에서 꺾이지 않는 희망의 상징이다. 아버지의 손끝에서 펄럭이는 나비 한 마리가, 아들에게는 인생의 진짜 가치를 보여주는 수단이 된다. 그리고 독자에게는 ‘진짜 어른’이란 무엇인지 묻는다. 나비는 그렇게 현실을 나는 꿈이 된다.

 

『나비를 잡는 아버지』는 짧지만 밀도 높은 이야기로 부성과 자존, 상징의 깊이를 모두 담아낸 작품이다. 아버지를 다시 바라보고, 삶의 방식에 대해 질문하게 만들며, 우리는 소설을 덮고 나서도 한참을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는 감성의 눈을, 어른들에게는 반성과 회복의 기회를 건네는 소중한 문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