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쿠샤의 추억』은 서울 종로에 실제로 존재하는 근대 역사 건축물 ‘딜쿠샤’를 배경으로, 주인공 아이가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며 잊혀졌던 역사 속 사건들과 사람들을 만나고, 그 속에서 자신과 가족의 정체성, 더 나아가 우리의 역사적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형 동화다. 단순한 역사 설명이 아닌, 생생한 체험과 감정을 담은 이야기 구조는 어린이 독자뿐 아니라 어른 독자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이 글에서는 『딜쿠샤의 추억』이 어떻게 시간여행이라는 상상적 장치를 통해 역사적 체험과 정체성의 의미를 전달하는지를 중심으로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본다.
딜쿠샤의 추억 - 시간여행이라는 장치로 열린 역사 체험의 창
『딜쿠샤의 추억』의 중심 서사 장치는 바로 ‘시간여행’이다. 주인공 아이가 오래된 건물 딜쿠샤에서 우연히 비밀스러운 문을 발견하고, 과거로 이동한다는 설정은 독자로 하여금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닌, 살아 있는 역사를 직접 경험하게 한다. 특히 아이의 시선을 통해 전개되는 시간여행은 무겁지 않고, 유쾌하면서도 긴장감 있게 구성되어 있어 몰입도가 높다. 이 설정 덕분에 독자는 마치 자신이 그 현장에 함께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되고, 단순히 정보를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하게 된다.
시간여행의 목적지는 일제강점기 조선. 그곳에서 주인공은 독립운동가들과 만나고, 당시의 사회 분위기와 사람들의 감정, 긴장감 넘치는 일상을 고스란히 마주한다. 아이는 그 속에서 용기, 희생, 슬픔, 기쁨 같은 다층적인 감정을 배우며, 과거를 단순한 ‘과거’로 치부하지 않게 된다. 독자는 주인공의 경험을 통해 ‘역사는 살아 있는 것’이며, 지금의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받는다.
또한 딜쿠샤라는 공간은 시간여행의 출발점이자 매개체로서, 실제 역사적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큰 상징성을 갖는다. 단지 허구의 세계가 아니라, 실제 서울 도심 속 숨은 역사라는 사실은 이야기에 설득력을 더해주고,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부드럽게 넘나들게 한다. 이는 역사교육에서 중요한 ‘현장성’과 ‘감정이입’을 자연스럽게 가능케 한다. 시간여행이라는 장치를 통해 『딜쿠샤의 추억』은 역사를 체험하게 하고, 감정적으로 연결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독자 스스로 역사를 받아들이고 생각하게 하는 힘이 된다.
과거의 인물을 통해 깨닫는 정체성과 가족의 의미
주인공은 과거로 간 시간여행 속에서 단지 역사적 인물만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그 인물들은 실제로 자신의 가족과도 연관이 있다. 이야기 후반부에서 드러나는 이 연결 고리는 이 작품의 정체성 탐구 구조를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아이는 단지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내 가족의 역사’를 몸소 겪으며 현재의 자기를 돌아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정체성’이라는 주제가 더욱 명확하게 부각된다.
과거에서 만난 인물들은 모두 제 몫을 다하며, 독립을 위해 분투한다. 그러나 이들은 영웅처럼 묘사되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이며, 때로는 두렵고 때로는 외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믿는 가치를 위해 움직인다. 주인공은 그들의 말과 행동을 보며 혼란을 느끼기도 하지만, 결국 그들의 결단과 신념이 자신 안의 ‘뿌리’가 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는 순간, 아이는 자기가 어디서 왔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전개는 어린이 독자에게 ‘정체성’이라는 개념을 자연스럽게 심어준다. 내가 누구인지, 우리 가족은 어떤 사람들인지, 우리 민족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특히 어린 시절 정체성 형성이 중요한 시기에 이 작품은 깊은 인식의 전환을 유도한다. 나는 단지 현재에 존재하는 개인이 아니라, 역사 속 인물들과 연결되어 있는 ‘연속된 존재’라는 메시지는 교육적으로도 큰 가치가 있다.
이 책은 단순한 과거 여행이 아닌, 현재의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만나는 가족과 선조들의 이야기는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뭉클한 감정을 남긴다. 『딜쿠샤의 추억』은 단지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내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섬세한 힘을 지닌 작품이다.
현실과 연결되는 역사 감각, 이야기로 체득하다
『딜쿠샤의 추억』이 특별한 이유는, 역사라는 주제를 아주 생활 밀착형 이야기로 풀어낸다는 점이다. 많은 역사 동화나 교양서는 사실 전달에 집중하는 반면, 이 책은 ‘삶 속의 역사’를 그려낸다. 독립운동가도, 시대의 인물도 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임을 강조하며, 그들의 감정과 선택을 통해 독자는 역사적 사건의 인간적 면모를 경험하게 된다. 이처럼 인간 중심의 서사는 감정 몰입을 이끌고, 더 오래 기억에 남게 만든다.
이야기 곳곳에 등장하는 당시 생활문화, 언어 표현, 먹거리, 의복, 사회 분위기 등은 독자에게 마치 그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한 감각을 준다. 주인공이 타임슬립을 하면서 느끼는 문화 충격은, 지금 시대 아이들이 과거를 대할 때 겪게 되는 공감대와도 맞닿는다. "왜 그때는 그렇게 살았을까?"라는 질문은 곧 "나는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이 전하는 ‘현실 속 역사 감각’이다.
또한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반복되는 주제는 ‘기억’이다. 과거의 이야기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이 질문은 단순한 역사 의식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스스로 지키기 위한 자기 인식과 연결된다. 주인공이 딜쿠샤라는 공간에서 시작한 여행은 결국 ‘기억’을 매개로 한 정체성 찾기의 여정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이야기로 남아, 또 다른 독자에게 전해진다.
이 책을 읽은 아이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성찰하고, 나아가 미래를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나면 ‘딜쿠샤’라는 실제 공간이 새롭게 보이고, 그 공간을 품고 있는 도시와 나 자신의 삶도 다시 느껴진다. 이것이 『딜쿠샤의 추억』이 주는 가장 큰 문학적 감동이다. 살아 있는 역사, 연결된 가족, 그리고 오늘의 내가 되는 이야기. 그 모든 것이 이 한 권의 동화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