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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거인으로 배우는 공존과 이해심, 그리고 문명 비판

by eeventi 2025. 4. 17.

『마지막 거인』은 프랑수아 플라스 작가가 쓴 그림책으로, 단순한 동화를 넘어선 철학적 메시지를 품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 책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문명이 마주칠 때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를 감동적으로 그려냅니다. 19세기 배경 속 탐험가의 시선을 따라가며, 우리는 자연의 거대한 존재 ‘거인’을 만나고, 그 존재가 사라지는 과정을 통해 인간 중심 문명의 한계를 목격하게 됩니다. 본문에서는 이 작품이 담고 있는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자연과 공존, 이해심, 문명 비판이라는 세 가지 시선에서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왼쪽에는 커다란 붉은 수염의 거인이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서 있고, 오른쪽에는 그를 올려다보는 한 소년이 작게 서 있는 장면

마지막 거인으로 배우는 자연과 공존: 거인이 상징하는 세계

거인은 단순히 크기가 큰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오래전에 잃어버린 자연의 본성과 원형적인 생명을 상징합니다. 그는 말이 없지만 생각이 있고, 힘이 있지만 해치지 않으며, 혼자지만 외롭지 않습니다. 이런 거인의 삶은 인간의 기준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일 수 있지만, 그것이 바로 자연 그 자체의 모습입니다. 자연은 말을 하지 않지만 살아 숨 쉬고, 법을 만들지 않지만 질서를 유지하며, 욕망하지 않지만 모든 생명을 품고 있습니다.

탐험가가 거인을 발견한 순간, 그는 처음으로 인간 이외의 존재가 가진 가치에 눈을 뜹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인간 사회의 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는 거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이 위대한 존재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충동을 느낍니다. 여기서 ‘알림’이라는 행위는 곧 인간 중심의 사고, 즉 자신이 본 것을 지식으로 소유하고, 문명에 복속시키려는 시도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자연을 대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생태계를 '보존'이라는 이름으로 관리하면서도, 실제로는 '이해 가능한 틀'로 편입시키려 하죠.

거인이 살던 세계는 인간의 언어, 문화, 권력이 통용되지 않는 공간이었지만, 인간의 발길이 닿는 순간 그 조용한 질서는 깨지고 맙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자연에 설치한 수많은 댐, 도로, 파이프라인과도 같은 상징입니다. 인간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아왔고, 그 결과는 종종 돌이킬 수 없는 파괴였습니다.

이 책이 진정한 감동을 주는 이유는, 거인이 단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와의 만남을 통해 탐험가 자신도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는 거인을 통해 자연의 깊이와 순수를 경험했고, 그 상실 앞에서 슬퍼할 줄 아는 감정을 회복합니다. 비록 그것이 너무 늦었지만, 그 감정은 독자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지금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공존이란 단지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감각을 회복하는 일 아닐까?

결국 거인은 죽지만, 그 존재를 기억하는 독자가 있다면, 그 이야기는 완전히 끝나지 않습니다. 『마지막 거인』은 독자에게 자연을 다시 바라보게 하고, 인간 중심의 문명적 시선을 잠시 내려놓게 하며, 공존이라는 말의 진짜 의미를 되묻는 그림책입니다.

이해심: 다름을 받아들이는 시선

소설 '마지막 거인'이 품고 있는 또 하나의 핵심은 ‘이해심’입니다. 거인은 인간과 생김새부터 다르고, 언어도 다르며, 사고방식도 전혀 다릅니다. 하지만 그는 위협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존재는 인간보다 더 성숙하고, 더 넓은 세계를 품고 있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름’과 마주하는 방식에 대해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현대 사회는 다문화, 다민족, 다양성의 시대라고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을까요? 『마지막 거인』 속 탐험가는 처음에 거인을 경계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와 눈을 마주치고, 행동을 관찰하고, 기호를 알아가며 점차 교감합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문화가 달라도, 진심은 전달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직접 경험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개인의 경험’이 사회 전체의 시선으로 확산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탐험가는 거인을 문명 사회에 소개하지만, 대중은 그를 단지 '희귀한 생물', '돈이 되는 이야기', '전시할 수 있는 존재'로만 취급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회가 다름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얕고 표피적인지를 볼 수 있습니다. 다름에 대한 이해는 시간과 관심, 그리고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일이지만, 많은 경우 사람들은 빠른 판단과 소비에 익숙해져 있죠.

거인은 자신이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대상화되고, 결국 고립됩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입니다. 외국인 노동자, 난민, 장애인, 성소수자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이해받는 존재'라기보다 '관리되고 조정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이 책은 이런 시선을 조용히 비판합니다.

『마지막 거인』은 아이들에게 다름에 대한 두려움보다, 이해하려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려줍니다. 또한 어른 독자에게도 우리 안에 숨어 있는 ‘배제의 시선’을 자각하게 하죠. 그리고 거인이 사라진 후 탐험가가 보여주는 후회와 기억은, 이해받지 못한 존재들에 대한 우리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묻게 합니다.

문명 비판: 탐험의 이름으로 파괴된 것들

인류의 19세기는 탐험 열풍이 있던, 인류 역사에서 가장 이중적인 시기였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향한 도전이었지만, 동시에 수많은 문명과 자연이 무너진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거인』은 바로 이 시대적 배경을 담아, 탐험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진 인간의 욕망과 폭력을 조명합니다.

탐험가는 선의로 출발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이미 ‘인간 중심’이라는 구조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거인을 ‘존재 그 자체’로 존중하는 데 실패합니다. 오히려 ‘이런 생명이 있다는 것을 세상이 알면 좋겠다’는 판단으로, 문명 세계에 그의 존재를 알리고, 그로 인해 거인은 사냥당하고 연구되고, 결국은 소멸하게 됩니다.

이 과정은 오늘날의 역사와도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식민지 시절, 유럽 탐험가들은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를 ‘발견’이라는 이름으로 파괴했고, 자연 자원을 ‘채굴’이라는 이름으로 고갈시켰습니다. 『마지막 거인』은 이 역사를 정면으로 비판하지는 않지만, 이야기 속에 은유적으로 강한 비판을 녹여냅니다.

이 책은 문명이 항상 옳지 않다는 것을 말합니다. ‘발전’은 생명과 윤리를 해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되며, ‘발견’이 누군가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일이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거인을 향한 인간들의 시선은 곧 오늘날 우리가 자연과 소수자, 약자를 대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습니다.

탐험가는 거인을 기억합니다. 그는 회고록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를 남깁니다. 그 기억은 일종의 속죄이자, 후회이며, 동시에 경고입니다. 그는 자신이 바꾼 세계의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책임을 집니다. 이 장면은 오늘날 우리가 기술 발전, 산업 개발, 세계화 속에서 ‘무엇을 대가로 얻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마지막 거인』은 문명을 전면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명의 속도’보다 ‘생명의 존엄’을 우선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죠. 그것이야말로 진짜 인간다움이며, 우리가 잊고 있는 윤리의 본질입니다.

 

『마지막 거인』은 어린이 그림책이라는 장르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은 작품입니다. 자연과의 공존, 이해심, 인간 문명의 자기반성까지 폭넓은 주제를 진지하게 품고 있죠. 거인은 사라졌지만, 그 기억을 되새기고, 지금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고 있는 존재들’을 다시 돌아볼 수 있다면, 이 이야기는 여전히 살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지켜야 할 마지막 거인은, 곧 우리의 자연, 다양성, 그리고 사람의 마음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