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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희네집 - 만희의 시선으로 본 한국 전통집 이야기

by eeventi 2025. 3. 30.

전통 기와집 앞에 앉아 있는 주인공

1. 골목에서 마당까지, 만희가 발견한 공간의 의미

어린아이가 보는 눈에는 모든 것이 궁금하다. 집의 구석진 공간 하나하나에도 이야기가 있고, 작은 틈에서도 상상은 자란다. 권윤덕의 그림책 『만희네 집』은 바로 그런 아이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주인공 만희는 엄마, 아빠, 동생과 함께 할머니 댁으로 이사 온다. 이 집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아파트나 빌라와는 다르다. 골목이 있고, 대문이 있고, 마당이 있다. 아이에게 이 새로운 공간은 놀이터이자 미지의 세계이다. 만희는 그 안을 누비며 공간마다 의미를 부여해 나간다. 책은 마치 카메라 렌즈가 움직이듯, 집의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서서히 이동한다. 첫 장면은 대문 앞 골목이다. 만희는 집 안보다 바깥이 먼저 익숙해진다. 골목은 아이의 일상 속 모험이 시작되는 곳이다. 이웃들과 마주치기도 하고, 고양이를 따라가기도 하며, 낯선 길모퉁이에서 새로운 풍경을 만난다. 골목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고, 아이의 감정을 확장시키는 공간이다. 도시에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사이 공간’이 만희의 마음을 조금씩 넓힌다. 대문을 지나면 마당이 나온다. 마당은 아이의 호기심을 가장 크게 자극하는 곳이다. 만희는 흙을 밟고, 풀을 뜯고, 벌레를 관찰하며 마당에서 자연과 접촉한다. 도시의 실내 환경에서는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없는 흙냄새와 햇살, 바람이 그를 감싸준다. 그림 속 마당은 생명으로 가득하다. 화초가 자라고, 장독대가 햇빛을 받고, 비 온 날엔 고인 물에서 개구리가 튀어나올 듯하다. 만희는 그런 마당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며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고, 생각을 정리한다. 작가는 마당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도, 따뜻한 색감과 부드러운 선으로 그 안에 이야기를 담아낸다. 마당에서 안방으로 들어가면 풍경은 또 달라진다. 바깥은 활동의 공간이라면, 실내는 휴식과 관계의 공간이다. 만희는 할머니 방을 살핀다. 장롱과 이불, 다기와 머리빗 하나까지도 아이에게는 새로운 세계다. 오래된 장롱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 이불의 무게, 벽에 걸린 달력은 그 집에 흐르는 시간의 감각을 전달한다. 작가는 그 모든 사물에 생기를 불어넣듯 세심하게 묘사한다. 만희는 공간을 통해 사람의 흔적을 읽는다. 벽지의 자국, 눌린 방석, 수세미에 남은 사용감 등은 모두 가족이 이 공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려주는 단서가 된다. 아이는 그 속에서 할머니의 삶을 상상하고, 가족이라는 존재를 더 가까이 느낀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공간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의 주체로 만든다는 점이다. 만희는 공간을 단순히 지나치지 않는다. 그는 그 안에 머물고, 관찰하고, 질문한다. 왜 대문은 이렇게 생겼을까? 장독대는 왜 높게 쌓아놨을까? 옥상에 올라가면 뭐가 보일까? 이런 질문들은 단순히 아이의 호기심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공간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고, 삶에 대한 존중으로 확장된다. 결국 이 집은 만희에게 단지 살아가는 장소가 아니라, 기억이 쌓이고 감정이 흐르는 하나의 세계가 된다. 『만희네 집』은 이러한 공간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다. 그리고 아이가 그것을 하나씩 이해해 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는 단지 집을 소개하는 그림책이 아니라, 집이라는 개념이 아이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성장의 일부가 되는지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작가는 마치 만희의 눈을 빌려 독자에게 말하듯, 이 모든 공간을 천천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감정들을 따라가게 만든다. 골목에서 시작된 여정은 마당을 지나, 안방, 부엌, 장독대, 옥상까지 이어진다. 독자는 만희와 함께 이 집을 천천히 걷는다. 각 공간은 하나의 장면이며 동시에 한 편의 이야기이다. 만희는 그렇게 공간을 통해 가족을 만나고, 자신을 알아가고, 세상과 연결된다. 이 책은 그 소중한 발견의 기록이다.

2. 전통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가족의 온기

가족이라는 말은 늘 따뜻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너무 익숙해서 그 의미를 잊기도 한다. 『만희네 집』에서 그려지는 가족은 단순히 함께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 책 속 가족은 전통이라는 배경 위에서 서로를 보듬고, 말없이 안심을 주는 존재로 그려진다. 주인공 만희는 부모님과 동생,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산다. 세대가 다른 이들이 한 지붕 아래서 살아가는 모습은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그런 일상이 이 그림책을 통해 조용히 펼쳐진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만희의 가족은 일상을 함께하며 서로를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엄마는 부엌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아빠는 장독대를 살피며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눈다. 동생은 만희를 따라다니며 호기심을 공유한다. 이 모든 장면은 특별한 사건 없이도 가족의 관계를 느끼게 해 준다. 작가는 일상의 소소한 장면들을 하나하나 짚으며, 그 속에 담긴 정을 드러낸다. 특히 할머니의 존재는 전통적인 가족 안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다. 할머니는 집안의 오랜 물건들을 보관하고, 장독대의 상태를 챙기며 가족의 식생활을 유지한다. 그 모습은 단지 노동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으로 느껴진다. 만희는 그런 할머니의 손길을 보며 배우고, 자신도 집안의 일부가 되어가는 경험을 한다. 전통적인 공간에서 할머니는 지식과 기억의 전달자이며, 가족 간의 유대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그림책에 표현된 집의 구조 역시 전통과 밀접하다. 대문, 마당, 안채, 부엌, 광, 장독대 등은 한국 전통 가옥의 형태를 잘 보여준다. 각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가족 간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무대이다. 마당에서는 아이들이 놀고, 부엌에서는 음식을 만들고, 장독대에서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맛이 만들어진다. 이런 전통적 공간은 세대 간의 공감과 연결을 가능하게 한다. 만희는 이사 오기 전까지 이런 구조에 익숙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집을 하나씩 알아가며, 자연스럽게 가족의 일상에 스며든다. 할머니가 깍두기를 담그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아빠가 옥상에 올라 빨래를 너는 모습을 보며, 만희는 말없이 배운다. 전통이라는 것은 꼭 설명하거나 가르쳐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마음으로 느끼며 전해진다. 가족의 온기는 말보다 행동에서 전해진다. 『만희네 집』에서는 따뜻한 말보다 따뜻한 행동이 더 많이 등장한다. 아이를 위해 손수 만든 음식, 고단한 하루를 함께 정리하는 저녁 식탁, 조용히 등을 토닥여주는 손길, 이런 것들이 그림 속에서 조용히 반복된다. 만희는 그런 장면들을 바라보며,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감정을 이해하게 된다. 가족은 늘 곁에 있고, 그런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는 든든하다. 작가는 현대의 어린이들에게 전통 가정의 형태를 소개하면서도, 그것이 과거의 유물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한다. 오히려 현재 속에서 여전히 유효한 가족의 의미를 전한다. 가족이 함께 밥을 먹고, 같이 빨래를 널고, 장독대를 지키는 그 일상은 여전히 따뜻하고 의미 있다. 만희는 그런 가족의 틀 안에서 자라나고 있으며, 그 과정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책을 읽는 아이들도 그 장면들을 통해 자신만의 가족을 떠올릴 수 있다. 『만희네 집』이 특별한 이유는, 가족의 사랑을 과장 없이 담담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눈에 띄는 감동적인 장면 없이도, 독자는 책장을 넘기며 점점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낀다. 그런 감정은 가장 깊고 오래 남는 울림이 된다. 가족이라는 말이 주는 따뜻함은 결국 익숙한 공간과 반복되는 행동 속에서 피어난다. 이 책은 그런 일상을 사랑하게 만든다. 만희는 이제 더 이상 낯선 집에서 방황하지 않는다. 그는 집 안의 구조를 이해하고, 가족의 루틴에 익숙해진다. 할머니의 방에서 나는 냄새, 부엌에서 들리는 칼질 소리, 옥상에서 바람에 펄럭이는 빨래들. 이 모든 것은 만희에게 안정감을 주고, 동시에 자신이 가족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아이는 그런 일상 속에서 자라고, 마음속에 온기를 채워간다.

3. 종이에 담긴 한국의 집, 그림으로 만나는 정서

그림책은 글에 그림을 더해 오히려 글만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더 깊은 감정을, 더 넓은 세상을 전한다. 권윤덕의 『만희네 집』 역시 그렇다. 이 책은 주인공 만희의 눈에 비친 한국의 전통 가옥을 사실적이고 따뜻한 그림으로 풀어낸다. 페이지마다 세밀하게 그려진 공간은 독자에게 한국적인 정서를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아이의 시선에 머물렀던 감정을 따라가게 만든다.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집의 구조와 그 구성요소들이다. 부엌, 장독대, 안방, 마당, 대문까지 이어지는 공간들은 단순히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의 주체처럼 기능한다. 작가는 마치 설계도를 보듯 정교하게 집의 구조를 그리고, 각 공간의 색감과 분위기를 섬세하게 표현한다. 이는 어린 독자뿐 아니라 어른 독자에게도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어릴 적 친척 집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 마당에서 장난감 자동차를 굴리던 감촉, 부엌에서 퍼지는 국물 냄새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그림 속 세상이 단순히 아름답게 그려진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생활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깨끗하게 정돈된 정물화가 아니라, 누군가 지금 막 걸어 나간 듯한 생생한 풍경이다. 부엌의 식탁에는 수저통이 놓여 있고, 안방에는 접힌 이불이 쌓여 있으며, 장독대 위에는 햇빛에 반짝이는 간장이 담긴 항아리가 있다. 옥상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빨래가 나부끼고, 마당 한편에는 흙 묻은 고무신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이런 그림은 단순한 묘사를 넘어서, 삶의 한 단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권윤덕 작가는 한국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데 있어 매우 정직한 접근을 한다. 그녀는 특정 장면을 미화하거나 과장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의 시선에서 본 집의 모습, 가족의 모습, 그리고 주변의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다. 덕분에 독자는 그림을 보며 이야기의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특히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이어지는 공간의 흐름은 하나의 큰 장면처럼 연결된다. 이것은 건축적으로도 설계된 공간의 연속성을 느끼게 하며, 이야기의 리듬감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림책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들도 있다. 먹빛으로 그려진 다음 장면의 윤곽선, 집 안의 같은 물건이 다른 장소에서 다시 등장하는 방식 등은 이야기의 구조를 시각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예를 들어 장독대가 처음에는 마당의 풍경 속에서 조용히 놓여 있다가, 다음 장면에서는 아빠가 그것을 닦고 있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반복과 변주는 그림책의 전개에 리듬을 만들어주고, 독자에게도 다음 장면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준다. 또한, 색채의 사용 역시 인상적이다. 이 책의 전반적인 색감은 따뜻하고 부드럽다. 붉은 기와지붕, 나무색 장롱, 햇살 가득한 마루, 담백한 회색의 장독대까지 모든 색은 현실적이면서도 정감을 준다. 화려하거나 자극적인 색은 없다. 대신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색채가 전체적인 분위기를 이끌고, 그림을 통해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한다. 색은 감정을 대변하고, 분위기를 결정한다. 그런 면에서 『만희네 집』은 시각적 정서 전달의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이 책을 작업할 때, 한국의 집을 아이의 눈으로 다시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그림 속 모든 장면은 어른의 시선이 아닌 아이의 높이에서 그려져 있다. 장독대가 높게 느껴지고, 부엌의 찬장이 크고 넓게 보인다. 방바닥의 질감이나 창틀의 그림자는 섬세하면서도 낯설지 않다. 이런 시선의 전환은 독자에게 새로운 감각을 선사하고, 아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 준다. 『만희네 집』은 결국, 한 아이가 공간을 이해하고 정서를 형성해 가는 과정을 그려낸 그림책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단지 주인공의 이야기로 머물지 않는다. 책을 읽는 독자 역시 그 공간을 거닐고, 정서를 공유하게 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우리는 한국적인 집의 구조와 더불어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감정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림은 말을 하지 않지만, 그 어떤 문장보다 많은 이야기를 전달한다. 이 책을 처음 접하는 어린이에게는 새로운 집에 대한 탐색이자, 공간에 대한 감각적 경험이 된다. 반면 성인 독자에게는 어린 시절의 기억, 전통적인 삶의 방식, 가족의 따뜻함에 대한 회고가 된다. 결국 이 책은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전하며, 종이 위에 펼쳐진 하나의 집을 통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집’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