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범 작가의 『문제아』는 학교와 사회가 한 아이에게 붙인 '문제아'라는 낙인이 어떻게 청소년의 삶을 왜곡시키고, 그로 인해 더 깊은 고립과 상처로 이어지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 글에서는 청소년 낙인의 사회적 영향, 문제의 본질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회복을 위한 학교와 가정의 역할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문제아라는 낙인이 만드는 청소년의 고립
낙인은 단지 단어가 아닙니다. 그것은 존재를 규정하고, 사람을 틀에 가두는 ‘보이지 않는 족쇄’입니다. 『문제아』의 주인공 주환은 선생님, 친구, 사회로부터 "문제아"라는 낙인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이 단어는 그가 어떤 실수를 했는지, 어떤 배경을 가졌는지를 묻기 전에 이미 정체성을 결정짓습니다. 그는 언제나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아이’로 간주되고,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 이면의 감정과 사정은 쉽게 무시됩니다.
이처럼 낙인은 단순한 편견을 넘어서 ‘사회적 고립’을 야기합니다. 주환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무시당하고, 선생님에게 외면당합니다. 그는 감정적으로 지치고, 자기방어로 인해 더욱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이 악순환의 시작이죠. 그가 조금만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면, "봐라, 역시 문제아야"라는 말이 따라붙습니다. 이런 환경은 결국 자아를 파괴하고, 자신을 혐오하게 만듭니다.
청소년기 아이들은 특히 ‘타인의 시선’에 민감합니다. 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주변의 피드백은 곧 ‘나’라는 사람에 대한 정의가 되곤 합니다. 그런데 주변이 반복해서 문제아라고 말하면, 아이는 스스로를 문제로 여기게 되고, 자신이 정말 ‘그런 사람’이라고 믿게 됩니다. 이것은 심각한 자존감 훼손이며, 장기적으로는 우울, 분노, 자해, 탈선 등 다양한 위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문제아』는 바로 이 지점을 정면으로 보여줍니다. 주환이 겪는 일상은 단순한 불복종이 아니라, ‘무시당하는 존재’로서의 고통이 응축된 결과입니다. 그는 사랑받고 싶지만 사랑받지 못하며, 인정받고 싶지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는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창구가 없고, 감정을 말할 수 있는 언어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침묵하거나 분노하거나, 둘 중 하나로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청소년은 아직 ‘형성 중인 인간’이라는 사실입니다. 문제아라는 낙인은 아이의 현재를 고립시킬 뿐 아니라, 미래까지 닫아버립니다. 그리고 이 낙인을 가장 쉽게 붙이는 사람은 어른들입니다. 어른들의 언어, 시선, 태도가 누군가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죠.
따라서 낙인을 없애기 위해서는 먼저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문제행동 뒤에 감춰진 감정과 사연을 보고, 아이의 상황을 맥락 속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낙인은 아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낙인을 걷어내는 일은 어른의 몫입니다.
문제아가 아닌 ‘도움이 필요한 아이’
문제아라는 말은 정체성처럼 아이에게 새겨지지만, 실제로 그 말은 너무나도 단순화된 사회적 편견에 지나지 않습니다. 박기범 작가는 『문제아』를 통해 ‘문제행동을 하는 아이’와 ‘문제아’ 사이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려 합니다. 문제행동은 분명 교정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아이 자체가 문제의 원천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도움이 필요한 상태’에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합니다.
주환은 부모의 관심 부족, 학교 내 따돌림, 교사의 편견,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서서히 무너져가는 인물입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단순한 ‘비행’이 아닌, 자신의 외로움과 상처를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배경이나 감정을 들여다보기보다, 결과적인 행동만을 보고 ‘문제’라고 단정 지어버립니다.
실제로 많은 청소년이 비슷한 현실 속에 놓여 있습니다. 부모가 바쁘거나, 가족이 해체되거나, 학교에서 소외되면 아이는 ‘정상적 경로’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행동은 종종 ‘도움 요청’의 형태를 띱니다. 소란을 피우거나 반항하거나, 거칠게 말하는 이유는 오히려 자신을 알아봐 달라는 무언의 외침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이를 대할 때 우리는 흔히 “문제아니까 어쩔 수 없다”, “저 아이는 원래 그런 아이야”라고 포기하거나, 거리 두기를 선택하곤 합니다. 그 결과 아이는 더 큰 외로움에 빠지고, 자신을 버려진 존재로 여기며 더욱 극단적인 행동으로 나아갑니다. 이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낙인보다 질문’이 필요합니다. 왜 저 아이는 그렇게 행동했을까?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
『문제아』의 가장 큰 메시지는 "그 아이는 문제아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아이다"라는 점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문제를 보는 시선부터 바꿔야 합니다. 정서적 결핍, 심리적 트라우마, 사회적 단절이라는 구조적인 원인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어떤 개입도 효과를 거둘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관계’입니다. 단 한 사람의 진심 어린 관심과 따뜻한 말 한마디, 공감 어린 시선은 아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시작점이 됩니다. 『문제아』 속 주환도 결국, 한 선생님의 관심과 변화된 태도 속에서 ‘회복의 가능성’을 찾게 됩니다. 그것은 어쩌면 작지만, 분명한 희망의 시작입니다.
학교와 가정의 역할, 이해에서 시작된다
청소년의 문제를 개인 탓으로만 돌리는 일은 매우 위험합니다. 특히 학교와 가정이라는 가장 밀접한 환경에서 아이의 행동을 ‘문제’로만 바라본다면, 아이는 결국 두 공간 모두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문제아』는 이러한 구조적 무관심과 단절이 어떻게 한 아이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학교는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지만, 가장 쉽게 ‘평가’가 이뤄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학생들은 점수, 태도, 출결, 규칙 준수 등을 통해 끊임없이 판단받고 분류됩니다. 문제아라는 낙인은 종종 이 같은 평가 속에서 쉽게 형성됩니다. 그러나 문제 행동을 단순히 처벌하거나 고립시키는 것은 문제 해결이 아닌, ‘추가적인 상처’를 만드는 일에 가깝습니다.
『문제아』에서 주환은 수차례 담임교사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려 하지만, 번번이 무시당하거나 왜곡된 해석으로 되돌아옵니다. 교사 역시 시스템에 익숙해져 ‘다수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소수의 고통을 외면하게 되는 현실. 이 장면은 학교가 아이에게 얼마나 무서운 공간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곳에 ‘이해’라는 단어가 빠졌기 때문입니다.
가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바쁘거나, 아이의 감정을 잘 읽지 못하거나, 물리적/심리적 거리감이 존재할 경우, 아이는 집에서도 ‘표현하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특히 한국 사회는 여전히 ‘말을 잘 듣는 아이’가 좋은 아이로 평가되는 경향이 있어, 감정 표현이나 문제 제기는 ‘반항’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이로 인해 아이는 침묵하거나, 스스로 감정을 부정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학교와 가정의 역할은 무엇보다 ‘이해의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감정을 존중하며, 배경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왜 그러니?" 대신 "무슨 일이 있었어?"라고 물어보는 언어의 변화만으로도 관계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문제아』는 그런 변화를 꿈꿉니다. 단 한 사람의 어른이, 한 교사가, 한 가족이 그 아이에게 진심으로 다가간다면, 그 낙인은 희미해지고, 아이는 다시 연결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줍니다. 결국 청소년 문제의 해결은 구조의 변화가 아니라, 관계의 회복에서 시작됩니다. 그 중심에는 ‘이해하려는 시선’이 있습니다.
『문제아』는 단지 청소년의 일탈을 다룬 작품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아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책입니다. 청소년의 문제 행동은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낙인이 아닌 관심, 판단이 아닌 질문, 단절이 아닌 연결을 통해 우리는 아이의 삶을 바꿀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