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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모모'는 시간, 여유, 존재의 가치를 되새긴다

by eeventi 2025. 5. 17.

미하엘 엔데의 『모모』는 단순한 아동 판타지 소설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현대사회를 향한 묵직한 통찰과 경고가 담겨 있다. 작품은 ‘시간’을 중심 개념으로 삼아, 산업화 이후 속도에만 집착하게 된 세상이 놓치고 있는 가치를 이야기한다. 특히 작품 속 '회색 신사'는 현대인이 체감하는 압박과 효율 중심 사고방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주인공 모모는 그런 흐름 속에서 잊혀진 여유와 관계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모모’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시간을 둘러싼 철학, 인간 존재의 본질, 그리고 여유를 통한 진짜 삶의 회복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모모가 낡은 시계탑 앞 원형 광장에서 책을 읽고 있는 장면

소설 '모모' - 시간의 본질을 묻는 이야기의 구조

이야기의 시작은 어느 폐허가 된 원형 극장에 홀로 나타난 어린 소녀, 모모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모모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거나 설명하는 이론적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시간을 ‘사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녀는 시간을 계산하지 않고, 누군가와 함께 보내는 순간에 온전히 몰입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독자는 작품의 핵심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모모는 그에 대한 정답을 말하지 않지만, 삶 속에서 스스로 답을 발견하게 만드는 길을 열어준다. 작품 속 회색 신사들은 시간을 저축해야 한다는 논리로 사람들을 설득한다. 그 결과 사람들은 ‘시간 절약’이라는 허상에 매몰되어 점점 인간적인 삶을 잃어간다. 가족과 대화할 시간, 아이들과 놀아주는 여유, 스스로를 위한 사색조차 점점 사라진다. 이 이야기 구조는 비단 허구의 세계만이 아니라, 현실의 속도 중심 사회와 정확히 겹쳐진다. 시간이란 늘 일정하게 흘러가는 단위가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질적으로 전혀 다른 경험이 된다. 모모는 사람들이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며, 이 이야기는 점차 철학적 깊이를 더한다. 회색 신사들의 세계와 모모가 속한 세계는 단순한 선과 악의 이분법이 아니라, 선택과 태도의 차이를 보여주는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시간을 지배하려는 욕망과 시간을 살아내려는 태도가 충돌하면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자기 삶의 방식에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처럼 『모모』는 이야기의 구조 자체가 시간의 본질을 묻는 구조이자, 우리 일상의 리듬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한다.

여유를 잃은 사회에 보내는 따뜻한 시선

모모가 가진 가장 큰 힘은 말을 많이 하거나 특별한 지식을 갖춘 데서 나오지 않는다. 그녀는 그저 ‘잘 들어준다.’ 모모는 사람들의 말에 끼어들지 않고, 판단하거나 조언하지도 않으며, 그들의 존재 전체를 인정하며 경청한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그녀와 대화를 나눈 후 위로와 회복을 경험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여유’라는 키워드가 부각된다. 여유란 단순히 남는 시간이 아니라, 타인을 바라보고 기다려주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정서적 공간이다. 작품 속 세상은 점점 더 효율만을 강조하며, 여유를 사치로 인식하게 만든다.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 쓰고, 감정보다 계획이 앞서는 삶은 결국 인간관계를 고립시키고 내면의 소리를 묻힌다. 회색 신사들이 사람들에게 시간을 절약하라며 유혹할 때, 모모는 그 반대편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어떤 행동보다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낸다. 그녀는 친구들과 함께 노래하고, 이야기를 듣고, 별을 바라보며 밤을 보내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바로 그 속에 잃어버린 삶의 의미가 있다. 여유는 삶의 본질을 회복하는 열쇠이다.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며, 많은 것을 성취하는 것이 항상 가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천천히 느끼고, 깊게 바라보는 과정에서 인간은 진짜 ‘사는 느낌’을 경험한다. 『모모』는 이를 서정적이고 따뜻한 방식으로 전달하며, 독자에게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나 자신에게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여유는 게으름이 아닌 선택이며, 그 선택은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존재의 의미를 일깨우는 판타지적 메시지

작품 전체에 흐르는 판타지적 장치는 단지 흥미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색하기 위한 문학적 장치다. 거북이 카시오페이아, 시간의 관리자 호라 박사, 회색 신사들의 비밀 등은 현실의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지만, 그 상징 속에는 깊은 철학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특히 모모라는 존재는 모든 것을 되돌리는 구세주가 아니라, 사람들의 내면에 잠든 본질을 일깨우는 존재다. 그녀는 침묵과 경청, 그리고 순수한 의지로 잊혀진 삶의 가치를 일깨운다. 모모는 누군가에게 구원을 선물하는 인물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 안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존재란, 의미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쓸모’로만 평가받는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모모와의 만남을 통해 존재 자체의 가치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된다. 인간은 기능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감정 속에서 의미를 생성하는 존재임을 작가는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거북이와 모모의 동행은 느림의 철학을 상징하며, 호라 박사의 시간의 방은 삶의 리듬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환상적 공간이다. 이 모든 판타지적 요소는 단순한 상상력을 넘어,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모모』는 우리가 누구인지, 왜 살아가는지에 대한 답을 주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지며 독자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물음표 속에서 독자는 잊고 있던 존재의 감각을 회복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 책은 판타지가 아니라, 삶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하는 철학서로 기억된다.

 

『모모』는 단순한 성장 동화가 아니라, 시간과 여유, 그리고 존재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우리 삶의 방향을 되짚어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 속에서 이 이야기는 더욱 깊은 울림을 전하며, 일상 속에서 잃어버린 가치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 아닌 시간을 살아가는 방법, 여유를 두고 기다려주는 마음,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존중—이 세 가지가 조화롭게 녹아든 『모모』는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가 꼭 한 번 다시 만나야 할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