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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 전쟁'을 읽고 : 방관을 넘은 공감

by eeventi 2025. 4. 5.

주인공 서영이가 교실에서 괴로워 하는 모습

'악플 전쟁' 리뷰 - 악플의 시작

『악플 전쟁』은 초등학생 민서영이 새 학교로 전학 오면서 시작된다. 전학이라는 낯선 상황 속에서 서영이는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려 애쓰지만, 예상치 못한 적대감과 마주한다. 특히 미라라는 친구는 서영이의 존재 자체를 위협처럼 받아들이고,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시비를 건다. 미라는 외모나 성적, 성격 면에서 서영이를 견제한다. 문제는 이러한 질투가 현실에서 끝나지 않고 온라인 공간까지 이어진다는 점이다. 바로 악플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서영이가 받은 악플은 단순한 욕설이 아니었다. 악의적으로 조작된 이야기, 왜곡된 표현, 그리고 익명의 사용자들이 가세한 비방이 온라인 공간을 채운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온라인 카페라는 공간이 있다. 이곳은 미라와 그녀를 따르는 친구들이 익명으로 서영이에 대한 이야기를 퍼뜨리는 장소가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쓴 말이 한 사람에게 어떤 상처를 줄 수 있는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악플은 그저 재미있는 일탈처럼 느껴질 뿐이다.

작품은 악플이 시작되는 과정이 얼마나 사소하고 즉흥적인지 보여준다. 작은 질투, 순간적인 불쾌함, 또는 친구들 사이의 동조심리. 이런 것들이 모여 악플이라는 거대한 괴물을 만든다. 미라가 처음부터 서영이를 망가뜨리려 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 같은 위기의식 속에서 미라는 점점 서영이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 공격은 오프라인에서 시작되어 온라인으로 옮겨가며 파급력을 키운다. 이 소설은 악플이 만들어지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익명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서 사람들은 누군가를 비난하고 조롱한다. 그 행위가 상대에게 어떤 감정적 충격을 주는지는 상관없다. 오히려 그 충격이 클수록 더 큰 재미를 느낀다. 어린 주인공들의 이야기임에도 이 상황은 어른들의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작품을 통해 우리는 악플이 단순히 나쁜 말 몇 마디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그것은 누군가의 일상과 자존감을 무너뜨릴 수 있는 폭력이다. 그리고 그 폭력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손에서 시작된다. 악플은 특별한 누군가만 가해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경각심을 준다. 누구나 실수로, 혹은 무심코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음을 되새기게 한다.

이야기 초반의 악플은 점점 더 강도를 높여가며 서영이를 고립시킨다. 친구였던 민주마저 미라의 압박과 분위기에 휩쓸려 서영이에게 등을 돌린다. 고립된 서영이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채, 결국 큰 결심을 하게 된다. 이처럼 『악플 전쟁』은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무게를 지니며 독자들에게 온라인상의 언어가 지닌 위력을 강하게 전달한다.

방관과 동조의 책임

이 책에서 주목할 또 하나의 요소는 방관자와 동조자의 존재다. 이야기를 이끄는 주요 인물은 미라와 서영이지만, 그 사이에서 민주라는 인물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민주는 처음에는 서영이와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지만, 미라의 압박과 집단 분위기 속에서 점점 마음이 흔들린다. 미라의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오히려 소극적으로 동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과정은 악플이 단지 작성자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방관자란 문제 상황을 알고 있으면서도 개입하지 않는 사람이다. 민주와 같이 적극적으로 악플을 달지는 않지만, 잘못된 행동을 말리지도 않는다. 동조자는 방관자와 비슷해 보이지만, 더 나아가 가해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존재다. 이 소설에서는 그런 경계가 모호하게 묘사된다. 민주가 처음에는 서영이 편이었음에도 결국 미라의 곁으로 이동하는 모습은 주변 분위기와 눈치에 따라 태도가 바뀌는 청소년기의 심리를 그대로 반영한다.

이 장면에서 작가는 인간관계 속에서 생기는 묘한 심리적 작용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자신이 잘못이라고 느끼면서도, 분위기를 깰 수 없어 침묵하는 심리. 그 침묵이 결국에는 피해자에게 큰 고통을 주게 된다는 점은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다. 동조와 방관이 악플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들은 또 다른 의미의 가해자라고 할 수 있다.

작품 후반부에서 민주가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고, 서영이에게 용서를 구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이 장면은 단순한 사과가 아니라, 잘못을 직시하고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 과정이다. 우리는 여기서 관계의 회복이 단지 말로만 이루어지지 않음을 본다. 진심 어린 반성과 용기가 있어야만 진정한 화해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아이들의 이야기지만, 어른 사회에서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 직장, 가정, 학교, 커뮤니티 등 다양한 공간에서 우리는 방관자 혹은 동조자의 입장이 될 수 있다. 문제는 바로 그 역할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양산할 수 있는지 자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작품은 이 지점을 아주 현실적으로 짚어준다.

결국 악플이라는 행위는 눈에 보이는 글자뿐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분위기와 인간관계, 그리고 책임의식의 결여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을 이 작품은 명확히 드러낸다. 방관과 동조의 책임은 단순한 죄책감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공동체 속에서 우리가 지녀야 할 윤리적 태도와 연결된다.

공감과 회복의 힘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회복의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영이는 악플로 인해 큰 충격을 받지만, 끝내 무너지지 않는다. 그 힘은 내면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변 인물들의 변화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민주와 미라가 있다.

미라는 서영이의 고통을 목격하고 난 후 처음으로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자각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질투가 어떻게 타인을 괴롭히게 되었는지를 되돌아보며, 처음으로 반성한다. 이런 변화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서서히 쌓여온 감정과 사건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작가는 이 과정을 조급하게 다루지 않고,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그려낸다.

민주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자신이 방관자였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서 죄책감을 느낀다. 그 감정은 단순히 불편함을 넘어서 서영이에게 용서를 구하는 실천으로 이어진다. 이 장면은 용기라는 것이 단지 행동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회복의 출발점은 진실한 공감과 반성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공감은 단지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공감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미라가 서영이의 아픔에 공감하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왔는지를 반성한다. 민주가 서영이의 외로움을 느끼면서 용기를 내어 다가가는 것 또한 공감의 힘이다. 이처럼 공감은 인간관계에서 오해를 풀고, 다시 연결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회복은 단지 과거를 잊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인정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는 과정이다. 서영이가 다시 친구들과 연결되고, 더 이상 숨지 않게 되는 모습은 우리에게 회복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상처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더라도, 그 위에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쌓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작품이 독자들에게 주는 감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완성된다. 상처와 반성, 그리고 공감을 통해 관계가 회복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우리는 인간다움에 대해 다시금 성찰하게 된다. 『악플 전쟁』은 단순한 학교 이야기 이상의 깊이를 가진 작품이다. 그 안에는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언어의 문제, 관계의 단절, 그리고 치유의 가능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