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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데포, 다름과 우정 속 자아를 찾다

by eeventi 2025. 4. 19.

『엘데포』는 작가 시시 벨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그래픽 노블이다. 주인공 시시는 유년기에 병으로 청력을 잃고, ‘파워포닉스’라는 거대한 보청기를 착용한 채 학교생활을 시작한다. 청각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친구와의 관계에서 상처받고, 자존감을 잃기도 하지만, 상상 속 ‘슈퍼히어로’ 엘데포로 자신을 재해석하면서 점점 성장해 간다. 이 책은 단순한 장애 서사를 넘어, 청소년기 특유의 혼란, 고립, 정체성 탐색을 담아내며, 그 모든 감정의 흐름을 부드러운 유머와 섬세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이 글에서는 『엘데포』가 왜 청소년에게 꼭 필요한 책인지, 그 안에 담긴 ‘다름의 수용’, ‘진짜 우정의 의미’, ‘자아 찾기’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살펴본다.

의인화된 토끼 캐릭터가 빨간색 안경과 푸른 슈퍼히어로 복장을 착용하고 있는 모습

엘데포, 다름을 이해하는 청소년기의 첫걸음

청소년기는 ‘다름’이 낯설고, 그 낯섦이 두려움으로 바뀌는 시기다. 특히 신체적 특징이나 가족 환경, 경제적 조건, 성격의 차이 등 어떤 이유로든 또래와 ‘다르다’는 감각을 느낀 아이들은 쉽게 고립되거나 낙인찍히기 쉽다. 『엘데포』는 청각장애라는 분명한 차이를 지닌 주인공을 통해 이러한 감정 구조를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유쾌하게 그려낸다. 시시는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교실에서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 또 어떤 친구는 그녀를 ‘불쌍한 존재’로 취급하며, 위로라는 이름의 동정으로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작가는 시시를 단순한 피해자 캐릭터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내면은 매우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청력을 잃기 전의 시절을 그리워하면서도,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려는 노력, 그리고 자신이 친구들과 완전히 다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욕망이 교차한다. 이러한 감정의 충돌은 독자에게 ‘다름’이라는 개념이 결코 단순하거나 고정된 것이 아님을 일깨운다. 다름은 항상 존재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래픽 노블이라는 형식은 이 다름의 감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탁월하다. 시시의 보청기를 통해 교사의 목소리가 과장되게 울려 퍼지는 장면, 친구들의 시선에 당황하는 시시의 표정, 상상 속 슈퍼히어로 엘데포로 변신하는 장면들은 모두 그녀의 내면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을 읽는 청소년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시시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며, 비장애인으로서 당연히 누리던 일상들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벅찬 것인지 체감할 수 있다.

결국 『엘데포』는 다름을 이해하는 가장 따뜻하고도 효과적인 방식으로, 독자를 변화시킨다. 다름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일부이며, 그것을 통해 사람은 더 넓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 청소년에게 이 책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법’을 가르치는 동시에, 스스로도 다름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진짜 우정은 조건 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

『엘데포』는 청소년기에 형성되는 우정의 복잡한 감정 구조를 정밀하게 묘사한다. 친구란 어떤 존재인가? 단순히 함께 노는 사람? 비슷한 점이 많은 사람? 아니면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 시시는 학교생활 내내 다양한 친구를 만나고, 관계를 맺고, 상처를 받고, 다시 끊고, 새롭게 연결해 나간다. 이 모든 과정은 청소년 독자에게 우정의 민낯을 보여주고, ‘좋은 친구란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하게 만든다.

책 속에서 시시가 처음 친해진 친구는 그녀를 "도와주고 싶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대한다. 겉으로는 친절하지만, 그 친절은 실제로는 시시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보호자의 태도로만 머문다. 시시는 그런 관계에 점점 숨이 막히고, 결국 거리두기를 선택한다. 그다음 친구는 겉으로는 시시를 평범하게 대하는 듯 보이지만, 시시의 보청기를 놀림거리로 삼고, 은근히 ‘장애를 가진 아이’라는 낙인을 부여한다. 시시는 또다시 상처받고, 자존감은 무너진다.

그러나 책 후반부에 등장하는 친구는 다르다. 그 친구는 시시의 청각장애를 특별하게 여기지도 않고, 무시하지도 않는다. 그저 시시를 ‘시시’로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함께한다. 그때 시시는 비로소 ‘조건 없는 관계’라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이 『엘데포』가 전하고자 하는 진짜 우정의 본질이다. 장애가 있든 없든, 말이 많든 적든, 조건 없이 옆에 있어주는 존재가 바로 친구라는 것이다.

그래픽 노블 형식은 이 관계의 흐름을 더욱 실감나게 전달한다. 인물들의 표정, 장면 전환, 공간의 배치 등은 텍스트 이상의 의미를 전달하며, 독자는 시시의 감정 변화에 깊게 이입하게 된다. 이는 단지 이야기의 몰입감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청소년이 스스로의 관계를 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어떤 친구였는가? 나는 누군가를 배려한답시고 오히려 상처 준 적은 없었는가? 혹은 나 스스로도 ‘다른 나’를 숨기며 관계에 끌려다닌 적은 없었는가?

『엘데포』는 그런 자문을 던지게 하며, 우정이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주는 관계임을 되새기게 만든다. 특히 청소년기라는 관계가 가장 예민하고 중요하게 작동하는 시기에, 이 책은 거울 같은 역할을 한다. 읽는 동안 독자는 시시와 함께 웃고 울고 실망하고 다시 희망을 찾으며, 우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자아를 찾는 상상력, 엘데포의 힘

이 책의 가장 인상적인 장치는 단연 시시의 상상 속 정체성 ‘엘데포’다. 엘데포는 단순한 히어로 캐릭터가 아니다. 그것은 시시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솟아난 자기방어이자 자아 회복의 상징이다. 현실에서는 보청기를 착용한 소녀지만, 상상 속에서는 교실 구석구석 선생님의 목소리를 도청(?)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슈퍼히어로가 된다. 시시는 현실에서의 고립감을 상상이라는 세계로 끌어와 변형시키고, 거기서 주도권을 쥔다.

이러한 상상력은 단순한 회피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을 견디기 위한 유일하고도 적극적인 방식이다. 시시에게 엘데포는 단지 '강한 나'가 아니라, '나를 인정해 주는 나'이기도 하다. 이는 자아 정체성 형성의 중요한 단서다. 대부분의 청소년은 자아를 찾기 위해 혼란을 겪는다. 현실의 나는 마음에 들지 않고, 사회는 이상적인 틀을 강요한다. 이때 상상력은 그 틀을 일시적으로 부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게 해 준다.

『엘데포』는 이 과정을 유쾌하고 솔직하게 보여준다. 시시는 자신의 약점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무기화'한다. 보청기를 통해 선생님의 목소리를 멀리서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말하며, 자신이 가진 특별한 능력을 인정받는다. 물론 처음에는 이 상상력도 스스로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것은 진짜 힘이 된다. 자기를 지키고,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표현하는 힘. 엘데포는 바로 그런 힘의 상징이다.

청소년 독자에게 이 메시지는 강력하다. 현실에서 내가 작고 부족하게 느껴질지라도, 내 안에는 나만의 힘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힘은 남들이 알아봐 주기 전에도 내가 먼저 믿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자존감 교육이나 상담에서 흔히 말하는 ‘내면의 힘’과 맞닿아 있다. 『엘데포』는 그 개념을 시각적으로, 서사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해 낸다.

그래픽 노블이라는 형식은 상상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엘데포로 변신하는 장면에서는 컬러 톤과 레이아웃이 바뀌고, 시시의 감정이 극대화된다. 이는 단순한 만화적 기법을 넘어서, 자아의 다층성을 자연스럽게 독자에게 전달하는 문학적 장치가 된다. 그 결과 『엘데포』는 단지 재미있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강력한 성장의 거울이 된다.

 

『엘데포』는 청소년에게 건네는 진심 어린 메시지다. 다름을 받아들이는 용기, 진짜 우정을 알아보는 눈, 나만의 힘을 발견하는 상상력. 이 세 가지는 단지 청각장애를 가진 한 소녀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청소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우리 모두에게 말한다. 너는 이미 슈퍼히어로가 될 자격이 있다고.